희열희열

Posted at 2016.01.13 23:41 | Posted in 잡담

나는 하기 싫은 일은 잘 안 하는 사람이다. 하기 싫었던 일에 갑자기 흥미가 생겨서 열심히 해도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한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의 권유에 영어 학원을 6년간 다녔다. 이 학원은 원생에게 강한 학습 욕구를 부여했는데, 반에서 상위권에 들면 문화상품권을 준다는 거였다. 액수는 최대 만 원으로, 이는 당시 학원비가 20만 원 안팎인 것을 생각하면 5%의 캐시백이면서 부모님께 걸리지 않고 현질할 수 있는 일용할 쿠폰이었다. 나는 A4 파일을 꽉 채울 정도로 상을 탔다. 물론 경제관념이 확고해서 5% 캐시백을 챙기려 한 건 아니고, 그냥, 남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집의 책장에서 프로그래밍 서적을 봤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이 책은 XML 프로그래밍을 다루었다. 처음 접한 프로그래밍의 세계는 기가 막혔다. 책의 그림대로 결과가 나오는 일은 절대 없었고, 뭔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네이버 마이홈에 HTML 강좌 사이트를 발견하고, 공부하면서 내 꿈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이 홈페이지는 HTML의 frame 태그로 몇 개의 간단한 페이지를 연결한 것에서 시작해서, 나야나의 무료 템플릿을 사용하거나, 올-플래시 홈페이지로 개조되기도 했으며, 끝에는 텍스트큐브를 사용한 블로그가 되었다. 이렇게 내가 만든 홈페이지를 남에게 알려주고 칭찬을 받으며 희열을 느꼈다.

청소년 시기의 호기심과 많은 컴퓨터 사용 시간에 힘입어, 나는 야한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이 때 애니메이션을 접하는데, 처음 본 게 <작안의 샤나>다. 나는 형이 어느 목적으로 사용하던 전자사전에 매일 밤 애니메이션과 그것을 넣어 시청했는데, 얼마나 재밌었는지 부모님께서 외박하시는 날이면 밤을 새우며 봤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니 체력은 날로 나빠졌고, 수업 시간에는 조는 게 일상이 됐다. 학교 공부는 필요한 때만 대충 하고 말았고, 결과, 꿈에 그리던 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에 진학 실패.

좌절을 겪은 후, 시도 때도 없이 보던 애니메이션 감상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시 프로그래밍에 빠져 살았다. 담배를 단번에 못 끊듯, 당시 나는 애니메이션 감상 대신 애니메이션 음악이 즐비한 osu!라는 게임을 했다. 이와 관련한 웹서비스를 개발, 운영하며 조촐하게 돈을 벌었다. 그러자 문득 드는 생각이 "대학 진학을 해야 하나?"였다. 동기는 대학에 인터넷보다 많은 정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독학학위제라는 제도를 얼핏 듣고 진학의 필요를 못 느낀 것이었다.

그러다 게임 내에서 좋은 인연을 맺었다. 초등학생 때 그 경쟁심은 아닌데, 따라잡고 싶다는 욕망을 마구 주는, 그런 인연이었다. 친구에서 멘티로, 친구로, 마구마구 변하는 관계 속에서 나는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 이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다. 내 성적은 모의고사에서 항상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허나 거시기한 감정으로 공부를 하니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일이 있어,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본 수능시험에서는 중하위의 성적을 받았다.

지금 나는 대학 1학년이다. 동아리를 개설, 운영하고, 활동하며 실적을 냈다. 학과 공부만 하기보다 교양도 열심히 쌓고, 결과로 과탑을 해 장학금을 지원받는다. 나름대로 연애에 도전하기도 했다. 성공과 실패의 사이에서 희열을 느꼈다.

이 변태 같은 글에서 중요한 건, 내가 곧 군대에 간다는 것이다. 전역 후 무얼 할지 고민하며 희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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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 챠이로네코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잘다녀오세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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